예술 및 미디어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작품 활동이 한창이다. 지난 2018년, 프랑스의 예술 단체 오브비어스(Obvious)는 스스로 성장하는 '생성적 대립쌍 네트워크(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기반의 인공지능을 활용해 '에드몽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라는 가상의 초상화를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인공지능이 만든 최초의 작품으로 인정받았고, 미국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예상 낙찰가 1만 달러보다 45배에 가까운 43만 2천 달러(약 5억 원)에 낙찰됐다. 이 기념비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예술 업계에서 인공지능과 작품을 조합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인공지능, 국내에서도 예술과 결합 中
이처럼 인공지능을 예술에 활용하는 사례는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 산업의 발달에 기여하고, 더 크게는 산업 전체에 영향을 줄 만큼의 파급력을 지닌다. 우리 정부 역시 두 팔을 걷어붙인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와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조현래, 콘진원)이 주최하는 ‘2021 콘텐츠임팩트’ 사업은 5G, 블록체인, 빅데이터, 증강 현실, 가상 현실 등 미래 기술과 관련된 콘텐츠 기업, 창작자, 개발자의 협업을 통해 차세대 문화 및 예술 시장을 이끌 미래 융복합 전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추진된다. 콘텐츠 임팩트 사업은 지난 2018년 시작해 올해로 네 번째에 접어들고 있으며, 매년 과학 기술과 예술을 융합한 다양한 문화 예술 및 공연 콘텐츠를 제작해 결과를 발표한다.
인공지능과 예술의 만남, ‘AI Meets Hybrid’
\'세이브더AI웹툰\' 팀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인공지능과 예술 관련 미디어를 조합한 사례부터 살펴보자. ‘세이브더 AI웹툰’ 팀의 ‘세이브더 AI웹툰’ 프로젝트는 웹툰, 웹 소설,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스토리와 줄거리를 생성하는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다. 웹툰 제작 단계의 시작인 스토리 구성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활용함으로써 실패하지 않는 구성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인공지능으로 그림 콘티를 학습하고, 학습된 인공지능으로 유저의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적절한 컷 콘티를 제시한다. 인공지능은 자연스럽게 적절한 이미지와 대사, 구성을 제안해 웹툰의 몰입감을 끌어올린다.세이브더AI웹툰은 향후 시장성이 밝은 웹툰, 웹 소설 시장을 공략해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도울 계획이다.
‘샘테크’ 팀의 ‘SAM’은 유튜브나 브이로그를 촬영하는 1인 미디어 창작자을 위한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영상과 매칭되는 배경 음악을 자동으로 추천해준다. 인공지능에 영상을 투입하면 영상의 속도, 색상, 사람의 행동이나 표정 등을 분석한 다음,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파악해 이를 토대로 스토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한다. 실제로 대다수의 영상 편집은 촬영하는 노력보다도 편집하는 단계에서 더 공수가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배경음악은 영상의 분위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하나하나 들어보고 선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샘테크의 ‘SAM’이 상용화된다면 1인 미디어 업계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퐁퐁랩'팀은 밈을 인공지능으로 생성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퐁퐁랩’의 ‘밈니언즈’는 밈(meme)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밈 리믹스 인공지능 생성 플랫폼이다. 밈이란, 인터넷에서 생성된 유머 이미지나 패러디물을 의미하며 텍스트나 합성 등을 거쳐 재확산하는 경향이 있다. 퐁퐁랩은 밈을 편집하려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간단하게 밈을 합성할 수 있는 도구와 플랫폼을 지원한다. 사용자는 밈과 음원을 넣기만 하면 인공지능을 통해 알아서 결과물이 생성되고, 사용자는 이를 공유하거나 활용하면 된다.
밈니언즈의 밈 생성 서비스가 유용한 이유는 밈 자체의 특성에 있다. 밈이 한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해당 밈을 배포하고, 공유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오는 노출이나 광고 효과 등은 일반 홍보 효과보다 훨씬 효과적인 만큼 상업적인 가치가 충분하다. 또한 메타버스나 NFT 등 밈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활용하는 수단도 등장해 앞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크다.
단편 영화 '블루(Blue)'의 일부. 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인공지능과 미디어 아트를 결합한 사례도 있다. 팀 ‘Heal The World’의 ‘블루(Blue)’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협업하여 만든 단편 영화다. 영화는 코로나 19로 인해 우울감을 겪고 있는 기타 연주자 ‘한별’이 인공지능 작곡가 ‘에이미 문’을 만나 음악의 즐거움을 다시금 깨닫는 이야기로, 실제 인공지능 작곡 엔진인 에이미 문과 사람이 연주해서 만든 음악이 영화에 사용되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전시하고 협업한다는 데 의의를 두는 것에서 벗어나, 인공지능의 결과물이 실제 콘텐츠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팀 ‘루바톤’의 ‘MUSAI.N’. 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팀 ‘루바톤’의 ‘MUSAI.N’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누구나 음악을 창작할 수 있는 서비스다. 참여자는 음악적 지식이나 악기 연주의 숙련도와 관계없이 음악을 흥얼거리는 것을 녹음하기만 하면, MUSAI.N 서비스의 피치디텍션 기술이 반영돼 멜로디 악보가 즉시 생성되고 장르별 인공지능 편곡 시스템이 음악의 완성도를 높인다. 또한 사용자가 악보를 잘 볼 줄 모르더라도 자체 편곡 시스템을 통해 음악을 편집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완성된 음악을 플랫폼으로 업로드 해 악보 거래까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현 단계에서는 아마추어 음악인들을 위한 창작 툴이지만, 향후에는 뮤지션들을 위한 음악 커뮤니티에서 누구나 음악 미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까지 노리고 있다.
음악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팀이 또 있다. ‘인공자연’ 팀의 ‘Nature Tone’은 메타버스로 구현한 가상 세계에 또 다른 자연을 생성하려는 실험이다. 인공지능 기술에 자연의 음색을 학습시켜 또 다른 자연의 소리를 만들고, 이에 맞는 자연의 이미지도 생성해낸다. 생성된 음원과 이미지는 메타버스로 구현되거나,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 NFT) 예술 시장에 유통함으로써 새로운 디지털 예술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인공자연 팀은 이를 통해 누구나 쉽게 사운드 인공지능 기술에 접근해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꿈꾼다.
인공지능, 미래 산업의 판도 바꾼다
2021 콘텐츠임팩트 ‘AI Meets Hybrid’ 참가자들. 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사실 예술과 인공지능의 결합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1957년, 미국 일리노이 대 교수인 레자렌 힐러(Lejaren Hiller)와 리어나도 아이작슨(Leonard Isaacson)은 당시 슈퍼 컴퓨터인 '일리악 I(illiac I)'을 활용해 최초의 현악기 4중주 음악을 프로그래밍했다. 당시 예술과 창작은 사람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이 사건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일리악 I을 비롯한 초기 컴퓨터의 계보를 이어서 지금까지 발전해온 컴퓨터는 우리의 일상과 삶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2021 콘텐츠임팩트로 선보인 인공지능 작품들도 시간이 지나면 세상을 바꾼 시점으로 기억될지 모를 일이다.
동아닷컴 IT전문 남시현 기자 (shn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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