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 커리어] 서른이 되었다⭐️(부제: 20대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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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30이 되었습니다. 20대를 돌아보면 정말정말 이야기 할 것이 많지만, 여기서는 커리어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커리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경험과 생각을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커리어선택에 고민하고 있을, 20대 중후반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my_Decade


⚡️20살

재수를 했다.

먼저 배경부터 말해보아야겠다. 애매하게 똑똑한 머리를 가졌었고, 고1,2때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성적이 꽤나 잘 나왔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지 않았었다. 조금 후회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때의 추억이 많이 남는 것 같다. 그래도 최소한의 공부는 했어야 했다. 고3때 성적이 곤두박질침을 느꼈고, 몰입해서 공부를 했다. 성적은 가파르게 올랐으며, 반에서도 의미있는 등수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너무 늦게시작했다. 수능성적이 좋지 않았고, 따라서 재수를 결심했다.

재수를 할 때,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갔다. 이천시의 강남대성기숙학원으로 들어갔다. 이제 막, 성적을 (다시)올리는 재미를 맛보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재수비용을 기꺼이 내주시겠다는데에 감사함을 가지고 재수학원에 들어갔다. 3월부터 11월까지 단 한번의 외출(2박3일)을 했다. 그냥 모든 날을 꾸준히 공부에 매진했던 것 같다. 엄청나게 열심히하지는 않았지만, 공부에 방해되는 요소를 절대 집어넣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계속 이어나갔다. 생각 해 보면 이때의 경험이 나의 20대의 기반이 되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지 꾸준히 함으로써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그 시작이 아닌가 싶다.


⚡️21살

놀았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일단, “학점 3.0도 대기업 잘 가더라~ 어차피 취직은 쉬워~” 라고 말하던 나보다 3년~6년 위의 선배들의 데이터를 과신했다. 이 때, ‘취직을 못하면 그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어차피 일거리는 많으니 하고싶은대로 살면 되겠다. 그게 멋있는 인생이니까~’ 라는 생각이 심어진 씨앗이였던 것 같다. 21살은 커리어와 관련된 고민이 없었다. ‘돈잘주는 직장 취직도 잘된다던데 뭐~’ 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22살

놀다 군대를 갔다.

이어서 잘 놀다 군대에 가게 되었다. 군대는 나에게 정말 맞지 않는 곳이였다. 군인과 가장 거리가 먼사람이 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의 문화가 맞지 않았다. 내가 직업선택에 있어, 자유에 큰 가치를 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3살

꽉찬 군대생활, 직업 고민 시작

책을 많이 읽고,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하루종일 광화문 한복판에 서 있으며, 많은 사람들을 관찰했다. 어떤삶을 사는걸까? YTN건물은 왜 불이 안꺼지지? Microsoft건물처럼 쾌적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직업선택을 잘하는 꿀팁 하나를 깨달았다. 하기싫은 일을 몇개 해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직업선택에 있어 너무 고민많다면, 해보지 않았으며 추후에도 하기싫은일들을 잠깐 경험해 보는것을 추천한다. 최소한 어떤류의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박근혜 하야관련 촛불집회가 매일 있었다. 경찰직원들이 매일매일 야근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꽤나 괜찮은 보상(money)를 지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큰 액수의 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전혀 부럽지 않았다. 나에게는 너무 맞지 않는 일이였고, 내가 돈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정확히 는, ‘어? 나는 돈을 별로 안좋아하나?’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던 것 같다.


⚡️24살

전역, 인도여행, 복학, 연극동아리

전역하자마자 2달간 인도여행을 떠났다. 히말라야쪽의 ‘Leh’라는 지역에 꽤 오래 지냈다. 해발 5000m지역의 작은 마을이였다. 거기 사람들은 그냥 살았다. 좋은직업, 나쁜직업 딱히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이 때, ‘삶은 그냥 사는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냥 살아 나가는 것이다. 야망이 있을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돌아와서는 복학 후, 연극동아리에 들어갔다. 이제 슬슬 직업에 광해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연극판에 있는 선배들을 보았다. 분명 일반 회사에 취직한 주변 친구들보다 훨씬 낮은 페이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 나갔다. 내가 직업선택에 있어서 너무 한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라는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질문은 결국 어떤 가치관을 스스로 가지고 있느냐?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 때,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에 꽂혔었던 것 같다. 자유라는 가치에 중점을 둔 나는, 자유롭게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에 자연스럽게 꽂혔다.


⚡️25살

삼성전자 LSI 디지털 회로설계를 하자!!!

디지털 노마드라는 직업을 가지려면, 통상 개발자류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코딩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들도 자율출퇴근제를 시작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지인 및 채용설명회 및 인터넷 커뮤니티의 정보를 수집한 결과, 교대근무 형식의 설비직군쪽이 아니라면, 대부분 자율출퇴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사실이 아닌것으로 판명났다)

따라서 "구글에 입사가능한 코딩천재가 되자!!"라는 꿈은 접었다. 부전공으로 융합전자공학부를 택했고, 회로설계 관련 코스웍을 듣고 삼성전자 LSI연구원으로써 자율출퇴근과 연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고자 하였다. 디지털 회로설계, 아날로그 회로설계 관련 커리어들을 계속 탐색했던 것 같다.


⚡️26살

삼성전자 LSI… 맞아?, 코딩 찍먹

내가 왜 컴퓨터 관련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학부에서 공부하던, 회로와 관련된 지식, 물리(전자) 관련된 지식이 아까워서 그런 선택을 했던 것 같다. 잠시 공부해봤던 코딩이 재미있긴 했지만, 코딩은 어렸을 때 부터 해온 친구들을 이길 수 없지 않나??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코딩공부를 하던 친구들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등의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따라서, 이미 하고있던것을 이용해서 자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코딩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마침 수학과외선생님으로 등록을 해둔 사이트에서, 코딩을 가르쳐보는건 어떻겠냐고 제의가 왔다. (학원선생님)이라는 페이도 괜찮았기에 수락을 했다. 하지만 관련 지식이 없었기에, 3주간 미친듯이 파이썬 기초문법과 간단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코딩공부를 같이 해 나갔다. 이때가 코딩과의 제대로 된 시작인 것 같다. 전전의 과 특성상 1학년때 C언어를 배우긴 했으나… 제대로 된 공부였다고 볼수는 없을 것 같다.

파이썬이 손에 익자, 2학기때는 머신러닝 관련 수업을 들었다. 꽤나 재미있었고 이제서야 무언가 만들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는 기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파이썬 기초문법과 간단한 머신러닝(심지어 딥러닝 아님) 이였다. 전.전 전공 공부를 해오면서 열심히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우긴 했으나, 컴퓨터(코딩) 관련 지식이 부족함을 느꼈다. ‘나는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데, 지금은 불가능한 상태야…’ 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HW와 SW그 중간 어딘가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도 하드웨어를 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 임베디드쪽을 찾아보곤 했다. 내가 배운게 마냥 아깝게 느껴졌었다. 애매해진 나는 창업 센터를 기웃거리곤 했다.


⚡️27살

미국교환학생, 자동차회사 인턴, 프리랜서 계약직, AI개발 인턴

미국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일부러 실리콘벨리 지역으로 갔다. 창업에 관심이 있는 공대생들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갔다. 회로설계(HW) 관련된 수업도 들었지만, 객체지향(SW) 수업도 들었다. 아직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었다. 실리콘벨리지역에서 일을 하고자, resume와 linkedIn을 만들었다. 이 때, 영어이력서와 영어면접준비를 하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진짜진짜 본격 커리어 고민이 시작되었다.

무얼 하고싶은지 애매했다. 가지고 있는 지식도 애매한 수준이였다. 이 상태에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지 않을까 싶었다. 실리콘벨리지역에도 한양동문 창업단이 있었다. 알음알음으로 연결이 되어 멘토링을 받으며, UC-Berkely 컴공 학생들도 인턴경험이 없으면 일(정직원)을 찾기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채용문화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1~4개의 인턴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제대로된 직장을 찾을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였다. 인턴공고를 싹 뒤져가며 면접을 보고, resume를 고쳐나갔다. 그 와중 코로나로 귀국을 하게 되었다.(머쓱)

물로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을 여전히 높이 평가하고, 자신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일단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조금 많이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처럼 인턴을 2~5개까지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직장은 ㅇㅇㅇ인턴이였다. 회의도 독일시간에 맞추어 영어로 진행하고, 뭔가 사내 메신저도 쓰고… 일하는 기분이 났다. 사람들도 괜찮았다. 괜찮은 직장이다 라는 생각 들었지만,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시계를 계속 바라보았다 일이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왜 6시에 퇴근해야지? 오늘 30분 일찍왔는데 나는 왜 6시에 맞추어서 퇴근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본인의 업무를 충실히 하면 되는건데, 왜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일을 많이하는건 상관이 없지만,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인턴이 끝나고, 마지막 4-2학기를 보내며, 다른 일들도 시작했다. ㅇㅇㅇ에서 공연용 (춤추는)로봇을 제어하는 업무를 맡았다. 일하는 시간도 자유로웠다. 순수 출근시간 기준으로 페이를 생각하면, 일반 아르바이트의 6배 이상의 시급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였다. 이 때, 처음으로 프리랜서 계약을 해보았다. 자유로운 시간관리, 충분한 보수에,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모습은 뭔가 멋있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앞으로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4살 때 꽂혔던 단어, 디지털 노마드에 근접한 생활처럼 느껴졌다.

기말고사 즈음에는, 스타트업에서 AI엔지니어로 인턴을 했다. 역시나 일정부분 시간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일도 재미있었다. 어쩌면 내게 엄청난 코딩 재능이 있는건 아닐까? 라고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심지어 기말고사 기간에는 출근시간을 조금 더 편하게 조정을 해 주었다. 출근하는 마음도 편했다. 그런데,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하게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부를 쉽게 축척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유튜브 영상들이 판을 치기 시작할때였던 것 같다. 대 유튜브시대의 초중반기였다. ‘직장인에서 월2000만원까지’, ‘월급노예 탈출’ 등 자극적인 문구에 낚였던 것 같다.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은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저게 월급노예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잘못된 생각이였다. 이제 졸업을 해야하는 순간이 왔고, 회사에서도 고맙게 정직원 제안을 했지만 거절했다.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코딩을 하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백수 상태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28살

길을 찾는 시간

28-1.

백수상태로 졸업을 했다. 작년에 프리랜서&인턴으로 모은 작은 돈을 비트코인에 넣었었고, 작은 돈은 2~3배까지 오르락 내리락 했다. 자고 일어나면 계좌에 80만원이 늘어나있기도 했다. 졸업식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엄마, 아빠는 정말 맛있는 밥을 사주시고 내려갔다. 쉽게 돈버는 방법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투자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았고, 작은 푼돈을 수십억까지 불릴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 같았다. 빨리 직장을 잡으라는 엄마, 아빠의 말에 자신만만하게 걱정말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려가셨다.

방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다.

‘내생각이 맞긴 한데…’, 뭔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알수없는 공허함을 채우고자 일을 이것저것 벌려보기 시작했다. 돈을 크게 벌 수 있는 법은 창업, 그렇다면 집에서 AI를 좀 더 공부한다음에 창업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방구석 전문가가 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신적 에너지를 상당히 많이 쏟은 시간이지만, 나의 인생에 한번쯤 필요했던 순간이였을 것 같다.**

집에 손을 벌려 컴퓨터를 샀다. 2021년 2월, 비트코인2차전성기 시대에 그래픽카드를 사기는 정말 힘들었다. 따라서 모든 부품을 하나씩 개별주문해서 손수 컴퓨터를 조립했다. 재미있었다.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28-2.

AI공부를 시작했다. 이것저것 보고, 스스로 만들어보고, 대학원에서 2~5년동안 배우는 내용을 1년만에 배우고 그걸로 무언가 창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둠속에서 혼자 해나가는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 동료도 없었고, 선생님도 없었다. 이윽고 재미가 없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접목시켜보고자 하였다. 음악과 AI의 교점을 찾아보게 되었다. CV쪽을 버리고, MIR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다.(이를 기점으로 2년정도 조금씩 계~속 공부함)

어둠컴컴한 방구석에서 혼자하는 공부는 너무 힘들었다. 좁다란 내방 책상에서 이해가 잘 안되는 논문을 중구난방으로 읽어나갔다. (논문도 읽는 순서가 있다고 한다. ex)tansformer를 읽고나서 그 후대의 모델들을 읽는다던지…) 대학원을 갈까 생각도 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환경적 요소로 인해 빨리 지쳤던 것 같다. 원래 목적인 공부를 해서 큰 돈을 벌어보자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창업을 하기위해 굳이 AI”연구”를 방구석에서 혼자 하고있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보다 러닝커브가 낮은 앱을 만들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것이 돈을 벌어다 주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Flutter를 이리저리 만져보며 앱을 만들어 보았다. 연구보다는 개발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Flutter 2.0이 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최신기술을 익혀두면, 인생이 어떻게 제대로 꼬이게 되더라도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간단한 앱을 만들어서 몇억을 벌었다는 이야기, 잘되는 앱을 20개이상 만들어서 매달 수천만원이 통장에 들어온다는 이야기 등 많은 환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앱 하나를 결국 완성했지만, 결국 스토어에 올리지 못했다. 왜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게 흐지부지 2달이 지나갔다.

28-3.

시간제약이 없고, 허황된 꿈을 찾다보니 유튜브를 많이 보게 되었다. 주30~60시간까지 유튜브를 보았다. 유튜버들의 수입을 알게되었고, 유튜버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좋아하던 음식인 햄버거 관련된 영상을 몇개 만들어보았다. 결국 비싸게 산 그래픽카드가 제일을 하나 싶었지만, 재미가 없어서 접었다. 마음이 무거워진 나로써는 밝은 영상들을 제작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 1달이 지났다.

28-4.

AI를 방구석에서 공부해서 창업을 하고 돈을 벌겠다는 꿈은, 수십개의 간단한 앱을 만들어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는 비트코인으로 넘어갔다.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하자, 1분만에 100만원이 벌리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모든 돈이 없어져 있기도 했다. 일종의 게임이고, 게임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실력을 늘리기 위해, 파이썬으로 간단하게 비트코인 단타 연습게임을 만들었다. 게임을 연습하면 단타실력이 늘고, 클릭 몇번으로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방구석에서 내가 허접하게 만든 게임을 하염없이 하다가 현타가 왔다.

‘이게 무슨짓이지….’

그렇게 1달이 또 지나갔다

28-5.

나의 지난 5개월을 분석 해 보았다. 수많은 red-signal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채우려고, 헛된 망상을 꾸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고자 마음먹었다. 유튜버를 하든, 공부를 하든, 창업을 하든, 돈을 벌든 일단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가서 뭘 해볼까… 고민을 많이 해봤다. 내가 좋아했던것… 춤과 연극이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이것저것 많은 기회들이 있어 보였다. ㅇㅇㅇ에서 주관하는 ‘음악과 AI’를 통한 창업지원 (비슷한)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ㅇㅇㅇ에서의 ‘아트 X AI’주제의 주말 연구모임도 신청했다. 다행히 두개 모두 진행할 수 있었다. 두 프로그램 모두 4달동안 열심히 참가했다. 큰곳에서 발표도 해보고, 관련업계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도 있었다. 역시 바깥으로 나와야 의미있는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는 것 같다.

그와중 돈도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여러가지로 일거리를 알아보았고, 어떻게 하다보니 일거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말정말 바뻤다. 내가 벌려놓은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간 미루었던 사회진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AI외주개발, 코딩문제 만들기, 공연스태프, 대기업 AI코딩교육 강사 등 다양한 일이 쏟아졌다. 일이 몰린달은 하루에 3시간씩 잤다. 어떤 달은 1000만원을 벌기도 하고, 어떤달은 80만원을 벌기도 하였다. 돈을 많이벌기는 했으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하는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일이없는 달(수입 없는 달)은, ㅇㅇㅇ 프로젝트와 주말연구활동에 집중했다.

세가지 생각이 들었다.

  1. 돈을 정말 많이 번 달도 기쁘지 않았다. 돈을 정말 못번 달도 슬프지 않았다. 드디어 24살부터 꿈에 그리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도 느껴보았다. 기쁘지 않았다.

  2. `월급노예`와도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다. 충분한 돈을 벌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3. 시간이 원하는대로 쓸 수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던 `자유`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가 원하던게 이게 아니였나? 싶었다. 미친듯이 바쁜 6개월을 보냈다. 알수 없는 의문을 가지게 된 채 12월이 되었다. 2022년이 밝았다.


⚡️29살

출발준비

29-1.

여행을 떠났다. 짬을 내에 여기저기를 다녔다.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기도 했다. 틈틈히 AI개발 외주일도 해주었다. 스키를 타다가 잠시 개발회의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자모드로 1달을 보냈다. 생각이 조금 정리되었다.

29-2.

내게 남은 미련이 뭐가 있을까? 음악이 있었다.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관련된 미련이나 집착이 조금 있었다. 작년에 모은 돈으로 건반을 사고, 가상악기를 샀다. 되돌아 갈 수 없도록 돈을 많이 사용했다. 에이블톤도 제대로 공부했다. 300정도를 투자했다. 기초 화성학, 툴 사용법 등을 익혔다. 프로그래밍을 할줄 아니, 작곡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튜브를 할 때 처럼, 이건 아니라는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악물고 더 해보았다. 2주정도 더해보다 순간 깨달았다.

내게 재능도 없고, 재미도 없고, 앞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이 작업을 새벽까지 붙잡고 있는 이유를 찾게 되었다. 그냥 예전부터 하고싶었던것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들을 모두 해보고 있었던 것이였다. 드디어 30년동안 상상했던 일을 모두 해보았고, 미련이 없어졌음을 느꼈다. 월급노예니 뭐니 하던 이야기도 진실도 아니고 허상도 아니였다. 그냥 서로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괜히 사람들의 이런저런 생각에 의미부여를 하며,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해보고싶었던 일들을 모두 해보는 과정들이였던 것이다.

29-3.

바로 회사를 찾아보았다. 앞으로 코딩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안해본것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원으로써 해봄직한것들을 해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ㅇㅇㅇ의 사업개발부서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했다.2달간 일을 했다. 최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퇴사 후, ㅇㅇㅇ에서 정직원으로써 B2B제품의 PM업무를 맡았다. 3달간 일을 했다. 역시, 엄청난 열정이나 최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오지는 않았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PM 업무를 맡았던 회사는 식대가 무제한이였다. 프리랜서 때처럼 돈을 많이벌지는 못했지만, 생각해보니.. 회사에서 제공하는 고용보험+식대+쾌적한 업무환경(오피스)+좋은동료 를 생각해보면, 돈 잘버는 프리랜서(feat.세금폭탄)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리소스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9-4.

이제 정말 뭘하면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SW엔지니어가 되면 되는 것이다.

AI를 이어나갈지, 다른 일을 할지 고민이 되었다. AI로 정점을 찍어보고 싶었지만, 사실 코딩은 재미있었지만 AI ‘연구’는 큰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영어와 수학을 잘하니, 논문을 슥슥 읽어나가고 구현해보고, ‘우왕… 신기하당’하고 끝났던 것 같다. 근 2년 가까이 (조금씩 꾸준히)공부했지만, 최고를 목표로 삼을만큼의 흥미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AI로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꽤나 흥미가 있었다. 실제로 재미있게 일했으나, AI관련분야는 연구자들이 해당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듯 느껴졌다. 따라서, 정말 아까웠지만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반도체를 버리듯, 그렇게 털어냈다.

초등학교 때를 떠올려보았다. 초등학교 4학년(2004년) 때, ‘장미가족의 태그교실’이라는 곳에서 HTML을 공부했었던 기억이 났다. 물론 엄마가 많이 싫어해서 컴퓨터 공부를 해낼수는 없었다. 뭔가 바로바로 보여지는것, 즉각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는것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원래 천직을 찾고싶다면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는게 강력한 방법중 하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정보처리기능사를 최단기간만에 따는 기염을(?) 토하던 때도 떠올렸다가, 이렇게 짜맞추다가는 끝도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를 되짚어 보는것은 커리어 선택에 좋은 판단기준이 되는 것 같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두가지 구체적인 계기가 있긴 하다. 첫번째로, 연극동아리 후배가 그래픽스 대학원을 들어간다고 한 것이였다. ‘아… 나도 그런거 하고싶었었는데… 나도 예쁜거, 막 움직이는거, 만들고싶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두번째로, 과동기가 KAIST정글 부트캠프에 들어가서 미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것이였다. ‘아… 나도 그런거 하려고 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약하게나마 지금 가지고 있는것들을 모두 내려두고, 지금 무얼 하고싶은지를 다시 생각 해 보았다.)

29-5.

KAIST 정글에 들어오게 되었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코딩을 하고, 서로 도움을 주며 성장 해 나갔다. 초반부는 주 80시간 정도씩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후반부인 지금은, 주 110시간정도는 프로젝트와 한몸이 되어있는 것 같다. 충분히 몰입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울러 어떤 특정 분야의 최고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때 기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때도 기뻤다. 이제는 또, 프론트냐 백이냐 고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고민을 그만해야할 시간이 찾아온 것 같다. 근 6년을 헤메고 나서야, 결국 다시 돌아서 SW엔지니어를 꿈꾸게 되었다. 이미 나에게 너무 잘맞는 직업이 뭔지 알게 되었다. 더이상은 고민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29-6.

그렇게 12월 31일이 되었다. 이제 30살이 되었다. 열정이 돌아왔고, 정신이 또렸해졌음을 느꼈다. 22살, 25살 때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지는 또렸함이다. 개발자로써 어떤 역할을 주어도 개의치 않고, 어떤 역할도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드는 것 같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30살이 되었다.

30이 되던 순간

🚀마치며

27살때 쯤, 각잡고 개발자가 되야지 라고 생각했으면 달라졌을까? 2년은 시간을 save했을텐데.. 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없는 K-regret식 후회는(한국 드라마식 후회), 의미가 없다. 해당 시간동안 충분히 노력했고, 경험을 쌓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글을 읽고있을, 어쩌면 커리어로 고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감히 조언을 한다면,

여력이 된다면, 고민이길어진다면, 이를 실천으로 옮겨보세요

라고 감히 조언을 해주고 싶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든 순간은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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