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 Life]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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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생각1

어느덧 서울에 올라온지 10년이 되었다. 21살때 올라온 나는 30살이 되도록 왕십리에 계속 기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 되어서야 왕십리를 떠난다. 여러가지 이유로 떠나게 되었지만, 여건이 허락했다면 조금 더 왕십리에 기거했을 것 같다. 조금 더 쾌적한 근처 오피스텔로 이사 해 나가며, 계속 왕십리를 떠돌았을 것 같다.

왕십리에는 너무나 소중한 추억들이 가득하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 때, 의례적으로 가게되는 그 술집들과, 그 알밥집, 그 중국집 등 길을 걷기만 해도 많은 추억들이 스쳐지나간다.

6출

과친구, 연극동아리, 댄스동아리, 외부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을 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친근하게 연락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래도 그 때 당시, 분명히 우리는 친하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 함께했던 추억들이 이렇게 떠오른다. 과친구들이 부르는 술자리에는 동아리를 간다고 도망가고, 댄스동아리에서도 뭔가 한 장르에 족적을 남길만큼 진득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중간에 군대로 피신했으며, 연극동아리의 거의 모든 뒷풀이도 죄다 중간에 도망갔다.

왕십리

도망치듯 나온 수많은 술자리들을 뒤로한체 공부를 열심히했나? 생각해 보면, 아닌 것 같다. 그냥 무언가를 했을 뿐이다. 무언가를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기록을 조금 해두었더라면, 나중에 지나간 20대에 대해 올바른 회고를 할 수 있을텐데 참 아쉽게 느껴진다. 동아리 활동, 과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4점대의 학점을 기록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방황”이라는 방패 뒤에서 아무것도 안했던 건 아닌가? 라는 의심도 든다. 하지만 흐릿한 기억속을 헤짚어 보면, 분명 “무언가”를 열심히 했긴 했던 것 같다.

가끔 동아리의 구심점이 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동아리를 위해 무언가를 했고, 계속 해왔고, 기여하고, 인정받고, 사람들과 소통했던 것 같다. 결국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많은 소통이 필요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결이 맞는 사람들, 안맞는 사람들, 소통의 질을 떠나서, 소통의 양 자체만으로도 인간관계에 충분히 의미있는 영향력을 주지 않나 싶다. 또 그런사람들이, 소통의 질도 좋은 것 같다. 좋은 인간관계가 좋은 정신건강이라는 수많은 연구결과를 떠올리면, 나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있나? 라고 생각해본다. 그래도 종종 반가운 마음으로 만나는 친구들을 떠올려본다. “과거”추억회상이 아니라, “현재”뭐가 남았나 생각해보면, 그런 친구들이 떠오른다. 나름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생각2

요즘 자주 생각하는 거지만 고향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커리어도 전기공학, 전자공학, AI, 비개발(PM, BD)을 거쳐 결국 컴공쪽(?)으로 정착을 하게 되었고… 대학생활에서 했던 다양한 찍먹 동아리 활동들도 그 궤를 같이한다. 물론 깊게 찍어먹기 위해 그 순간순간 정말 모든걸 바쳤다. 하지만, 마음은 금새 다른 새로운 무언가에게 흥미를 빼앗겼었다. 그래서인지, 고향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않았다” 보다는 “못했다”가 더 올바른 표현일 것 같다. 내가 춤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홀릴만한 실력을 갖췄더라면, 연기를 정말 잘해서 사람들을 감동시킬만한 실력을 갖췄더라면, 공부를 잠깐 했을 뿐인데 학점을 잘맞았더라면… 다른쪽으로 눈이 쉽게돌아가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만약”이라는 후회는 무의미 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므로, 그냥 그랬지 않을까… 하고 잠깐 생각해본다.

이런 나에게 유일한 고향은 물리적으로 종속될 수 밖에 없었던 “장소”인 왕십리 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왕십리를 떠나는게 더욱 아쉽다. 많은 방황들도 “왕십리”에서 이루어졌으며, 쓸데없이 허비한 시간들도 “왕십리”에서 이루어 졌었다. 그저 물리적 시간을 많이 보낸 것 많으로도 이런 애착이 생기는 것 같다.

3출

얼마전, 엄마가 현재 집을 리모델링 할지, 새로운 집을 알아볼지 고민하다 결국 현재집에 기거하는것을 택했던 일이 있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 해 보았을 때, 당연히 이사를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뭔가 조금은 이해가 된는 것 같기도 하다. 집은 결국 “나의 마음이 가장 편한 곳”인 것이다.

집 내부의 나의 물건들, 나의 규칙이 적용된 가구배치, 나의 추억이 담긴 집앞 카페 등 다향한 요소가 모여 “집”과 “고향”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주변사람들에게 장난스럽게,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면 다시 왕십리에 있는 근사한 아파트에 살겠다고 말했었다. 기연을 얻어, 5년뒤에 왕십리의 어느 30억짜리 아파트에 들어온다면 어떨까? 그때도 내 마음은 왕십리에 있을까?

그때도 왕십리에 그 어떤 애착들이 깊게 남아있을까? 16년동안 살았던 여수에 대한 애착보단 10년간 살았던 왕십리에 대한 애착이 훨씬 크다. 내가 미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왕십리에 돌아오더라도 “고향”으로 느낄까? 강원도의 어느 산속에서 펜션사업으로 성공하고, 왕십리에 돌아오더라도 “고향”으로 느낄까?

이 글을 작성하며 느꼈던 것이지만, 확실히 아닐 것 같다. 이제는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그만 남겨야겠다. 앞으로 만들어 나갈 새로운 추억들은 왕십리가 아닌 곳에서도 충분히 아름답게 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나는 더이상 학생이 아니고, 이전처럼 월화수목금에 한가롭게 집앞 카페에 가는 생활도 하지 않는다. 왕십리를 걸으면 우연히 마주치던 과친구들도 존재하지 않고, 맘편히 놀러갈 친구집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아직 떠나는게 무섭고, 허전하고, 아쉽지만, 인정해야겠다. 내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추억들은 더이상 이곳에서 만들 수 없다. 그때보다는 조금 더 삭막한 생활을 해나가야 하며, 20대때의 무지함과 미숙함을 지워내야 하며, 그때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홀로 나아가야 하며, 홀로 책임져야 한다. 실수를 용서받기 더욱 어려운 상황들이 많아질 것이고, 앞으로하게될 결정들은 미래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러한 팍팍함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성장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주변에 누군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 추억과 아쉬움과 그리움은, 앞으로는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이곳을 떠나고, 새로운 장소에서 홀로서기를 해나갈 것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사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알고있었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명시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 같다. 오늘을 기점으로, 이제는 훌훌 털어내고 그만 생각하고자 한다.

새로운곳에서도, 여태그랬듯, 또 잘 적응해 나갈 나에게 심심한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본다.

안녕!

hwakyung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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